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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크레이프

천재가 존재하는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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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완전한 것에 대해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묻지 않는다" 니체는 말했다. 

 

"우리는 마치 그것이 마법에 의해 땅에서 솟아난 것처럼 현재의 사실만을 즐긴다" 

 

"아무도 예술가의 작품 속에서 그것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지 못한다." 

 

"그 편이 나은 점도 있다. 작품으로 완성되는 과정을 보게 되는 경우에는 언제나 반응이 다소 시들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완성된 탁월한 기량'을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일상성보다는 신비함을 선호한다. 

 

"우리의 허영심과 자기애가 천재 숭배를 조장한다."  왜냐하면 천재를 마법적인 존재로 생각한다면 우리 자신과 비교하고 우리의 부족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신적인 존재`로 부르면 '우리'는 그와 경쟁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 말은 반대로 우리가 '신적인 존재'로  불리기 까지 부단히 노력한다면 우리를 시기하고 흠내려는 사람들이 알아서 제풀에 떨어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도있다. 

 

이는 악플러들도 어느순간 팬으로 돌아서게 된다는 것과 비슷한 맥락일까 ? 조금은 다를 수 있겠지만 압도적인 노력과 격차로 그 레벨의 차이를 만들게 되면 더이상 우리를 질투하고 자신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려하는 'Crap bucket' 현상에 고통받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고무줄이론과도 일맥상통한다. 어느 수준의 영역에서 벗어나기까지 온갖 외부의 비판과 끌어당김 등등에 압박을 받지만 이를 참고 이겨내기만 한다면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과 같은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내 생각은 이랬다.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한 대학가면서 적당히 하자"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면서 인생을 고통스럽게 하지말고 적당히 하면서 사는게 더 나은 삶이라고 여겼었다. 

 

시간이 지나 내 인생의 변곡점이 찾아올 무렵 난 이때를 회상하며 다시 내 생각을 되돌아봤다.

 

난 적당히 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결과에 대한 두려움, 만족하지못할 결과에 대한 자기방어의 기제로 "적당히"라는 말로 날 변호한 것이다.

 

중학교 시절 운 좋게(?) 내 친구 한명은 공부를 잘 하는 친구였다. 같이 학교를 가는길에 친구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공부를 잘해 ? 잘하는 방법좀 알려줘 "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시험범위 10번씩 읽고 공부해 " 

말도 안된다... 10번씩 언제 읽고 그렇게 살면 어떻게 무슨 재미로 삶을 사는거야 ? 라고 생각했다.

난 그런 답보다는 좀더 이상적인, 그의 재능 혹은 머리가 좋아서 시험점수가 좋게 나온다는 답을 바랬던 것 같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재능이 있을것이라 여겼고, 그들이 잘난것이라 믿었지만 알고 있었다.

사실 그들은 엄청난 노력을 통해서 그런 결과를 얻었다는 것을 

 

 노력을 통해서만이 우리는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

재능이 있더라도 그 재능은 노력없이는 빛을 발하지 못한다. 

 

노력을 쏟아부은 의식적인 연습이, 편안한 몰입의 상태로 이끌어 실제 수행결과를 보여주게 된다.

 

이제는 그 노력의 의미에 대해 알고있다.

행복이란 관념은 만들어진 것 뿐이란 것을 안다.

워라벨(Work-Life Balance)이 허상이란 것을 이해한다.

YOLO 와 같은 슬로건은 맘편히 즐기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

우리의 관심을 앗아가는 스마트폰, 알고리즘에서 비롯한 미디어,  즉 도파민 주사기에 대해 인지한다.

 

사람은 열정을 다해 헌신하면 얻고자 하는 것을 얻는다는 것을 안다.

천재들의 재능을 신격화하고 숭배하기보단 그들의 노력과 과정에 집중하여야 한다.

그리고 헌신을 다해 자신의 과업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지 스스로 진지하게 평가해야 한다.

 

삶에게 얼마나 많은 돈을 요구하든
삶은 기꺼이 내주게 되게 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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